이전에 일반인은 어려운 철학에 관심이 없으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현세 이익(現世利益)**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닫거나 완벽한 인격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건강하고 싶고,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으며, 월급이 오르길 원하고, 대학에 합격하길 바랍니다. 실제로 **”손에서 기운이 나와 어깨 결림이 나았다”**는 종교 단체의 신자들에게 입교 이유를 물어보면,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어깨 결림이 나았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행복을 실감하는 경험입니다.
과거에 종교는 반사회적 요소가 중요하다고도 말했지만, 완전히 반사회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도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반사회적 행위를 했지만, 치유 행위 자체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 중에는 **”사회가 싫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따라서 당신 역시 이러한 현세 이익을 강조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현세 이익 제공 방법
현세 이익을 강조해야 한다고 해도,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니까 병을 고치거나 월급을 올려줄 수 없다”**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말기 암을 기적적으로 치료하거나 월급을 10배 올려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현세 이익이니까요.
예를 들어, **”손에서 기운이 나와 어깨 결림이 나았다”**는 사례는 실제로 효과를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현상으로, 플라세보 효과(위약 효과)와 같은 원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는 플라세보 효과(위약 효과) 때문입니다. 실험에서도 **”이 약은 매우 효과가 좋다”**라고 말하고 포도당을 먹였더니, 실제로 병이 호전된 사례가 많습니다. 불안이나 긴장에서 오는 통증에는 특히 효과적입니다. 어깨 결림 같은 증상에는 최적이겠죠.
이러한 플라세보 효과가 실제 초자연적 현상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가 존재하든 말든, 신자가 그것을 경험하고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플라세보 효과 역시 아무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작용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치유와 사회적 의미
예수의 치유 행위를 보면, 꼭 병을 낫게 해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인정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대부분 말만으로 병을 고쳤다고 되어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 마술사들의 치료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는다.
-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혀를 만진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일반적인 치료법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식하지만, 당시에는 ‘병을 고치는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예수의 비범한 점은 의료 혜택을 특권층에서만 받던 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확장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실제로 병을 고쳤는지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치료’라는 경험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의미가 있었으며,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감사하며 행복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의 치유는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나는 너를 외면하지 않는다”**라는 사회적 메시지였습니다. 이것 또한 현세 이익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현세 이익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주저 없이 실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 전철에서 노인이 서 있을 때, **”자리를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주저한다.
- “거절당하면 어쩌지?”, “노인 취급한다고 화내지는 않을까?” 같은 고민이 생긴다.
-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만약 자리 양보를 거절당하면 “아, 그렇습니까?” 하고 다시 앉으면 됩니다. 화를 내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선행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종교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인간은 행동할 때 ‘이유’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사회적 신분을 넘어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해 선행을 한다”**는 확실한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주저 없이 착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선행을 위한 명확한 이유’를 제공하는 것도 현세 이익의 한 형태입니다.
종교적 가르침과 현세 이익
- 성실하게 일하면 월급이 오른다.
- 사람들의 험담을 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좋아진다.
- 작은 일에 화를 내지 않으면 가정이 평화롭다.
- 폭식하지 않으면 건강이 좋아진다.
-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 같지만, 실제 생활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현세 이익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단순히 도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종교적 가르침이 단순한 도덕 교육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가르침을 따를 때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강하면 **”신앙의 힘으로 더욱 노력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고, 그 결과 현실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정진(精進)이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과 노력의 조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현세 이익을 강조하는 종교적 가르침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종교에서도 현세 이익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